본문 바로가기
쫀쿠의 맛있는 디저트

마카롱 — 머랭이 가장 우아하게 변신한 순간

by myinfo29053 2026. 5. 14.
반응형

 

마카롱 — 머랭이 가장 우아하게 변신한 순간


있잖아, 지난번에 달걀 하나가 디저트가 되기까지 이야기 하면서 이런 말 했잖아.

 

*“흰자가 마카롱 껍데기가 됐다”*고.

썸네일 - 머랭이 가장 우아하게 변신한 순간

 

근데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 아쉽지 않아? 그 머랭이 어떻게 파리에서 가장 포토제닉한 디저트가 됐는지, 그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길고 드라마틱하거든. 오늘은 흰자 거품이 걸어온 그 변신의 여정을 끝까지 따라가보자.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수도원에서 살롱으로, 파리에서 서울까지.

마카롱은 사실 머랭 이야기의 가장 화려한 마지막 챕터야.


1. 아, 근데 마카롱이랑 마카룬은 달라!

본론 들어가기 전에 딱 하나만 짚고 가자. 영어로 macaron(마카롱)이랑 macaroon(마카룬)을 헷갈리는 경우가 많은데, 완전히 다른 거야.

마카롱 vs 마카룬 - 두 과자 비교

 

**마카룬(macaroon)**은 코코넛이나 아몬드 덩어리를 설탕, 흰자와 섞어 뭉쳐 구운 거야. 미국에서 주로 먹는 그 울퉁불퉁한 코코넛 쿠키. **마카롱(macaron)**은 아몬드 가루와 머랭으로 만든 얇고 반들반들한 꼬끄(coques, 껍데기) 두 장 사이에 필링을 채운 거야.

둘 다 같은 어원에서 갈라졌어. 이탈리아어 maccarone(마카로네) — 반죽을 치대다는 뜻이야. 그러니까 파스타인 마카로니랑도 먼 친척인 셈이지. 언어가 지역마다 다르게 발음되고 철자가 달라지면서 지금의 두 이름이 됐어.

 

오늘 우리가 이야기할 건 파리 버전, 즉 꼬끄+필링 구조의 마카롱이야.


2. 이탈리아에서 왔다고? 1533년의 그 혼수품

마카롱의 시작을 이야기할 때 항상 등장하는 이름이 있어. 카트린 드 메디치(Catherine de’ Medici).

1533년 카트린 드 메디치 - 이탈리아→프랑스 혼수품

 

1533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귀족 카트린은 프랑스 왕세자 앙리(나중의 앙리 2세)와 결혼하기 위해 파리로 왔어. 그때 혼수품 중에 포크, 향신료, 셔벗, 그리고 마카롱 레시피가 있었다고 전해져. 카트린이 데려온 이탈리아 요리사들이 아몬드, 설탕, 달걀 흰자를 섞어 구운 작은 아몬드 쿠키를 프랑스 궁정에 소개했다는 거야.

 

근데 솔직히 말할게. 이 이야기, 낭만적이긴 한데 100% 팩트라고 보기는 어려워.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카트린 기원설"에 대한 의문이 꽤 있어. 1533년 당시 기록에서 마카롱 레시피가 정확히 나오지 않거든. 카트린이 파리에 많은 이탈리아 음식 문화를 전달한 건 맞지만, 마카롱도 그 목록에 있었는지는 좀 불확실해.

 

그럼에도 아몬드 쿠키 형태의 원조 마카롱은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건 대체로 받아들여져. 이탈리아에는 지금도 아마레티(Amaretti) 라는 아몬드 과자가 있는데, 이게 마카롱의 먼 조상 격이야. 아몬드 가루, 설탕, 흰자만으로 만든 단순한 쿠키인데, 이 기본 구조가 프랑스로 건너간 거야.

이탈리아 아마레티 - 마카롱의 조상


3. 수도원 창문으로 팔린 쿠키 — 낭시의 마카롱 자매

마카롱이 프랑스 전역으로 퍼지는 데는 뜻밖의 공간이 큰 역할을 했어. 수도원이야.

 

프랑스 낭시(Nancy) 지역에는 카르멜 수도회 수녀들이 만들던 마카롱이 유명했어. 이 수녀들이 만든 건 지금 우리가 아는 두 겹짜리 마카롱이 아니라, 아몬드 가루와 설탕, 흰자만으로 구운 단층 쿠키였어. 수도원 규칙상 고기를 먹을 수 없어서 아몬드를 단백질·지방 대용으로 썼다고 해.

 

그러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터졌어. 혁명 정부가 수도원을 해산하고 재산을 몰수하면서 수녀들은 졸지에 길거리로 나앉게 됐지. 거처를 잃은 두 수녀가 마을 의사 집에 피신했는데, 생계를 위해 마카롱을 구워 창문으로 팔기 시작했어. 이 수녀들은 나중에 "마카롱 자매(Les Sœurs Macarons)"로 불리게 됐고, 낭시 마카롱은 오늘날까지 이 지역의 명물로 남아 있어.

낭시 마카롱 자매 - 1789년 수도원 창문 판매

 

수도원이 디저트를 만들고, 혁명이 그 레시피를 거리로 꺼낸 거야. 에그타르트가 수도원 빨래 이야기에서 시작됐던 것처럼, 마카롱도 수도원이라는 공간과 묘하게 닮은 탄생 배경을 가지고 있어.


4. 라뒤레가 발명한 것 — 두 개를 붙이는 단순한 아이디어

자, 여기서 마카롱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이 등장해.

 

1862년, 프랑스 남서부 출신 루이 에르네스트 라뒤레(Louis Ernest Ladurée)가 파리 16번지 뤼 루아얄(Rue Royale)에 빵집을 열었어. 아내 잔 수샤르(Jeanne Souchard)의 아이디어로 카페와 파티스리를 합친 살롱 드 테(salon de thé)로 진화했고, 상류층 파리지앵들의 사교 공간이 됐지.

1862년 라뒤레 살롱 드 테 - 파리 뤼 루아얄

 

그로부터 수십 년 뒤, 라뒤레 가문의 피에르 데폰텐(Pierre Desfontaines) 이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냈어. 1930년대의 일이야. 기존에 있던 단층 아몬드 머랭 쿠키 두 개를 가나슈(ganache)로 붙여보자는 거였어. 아이디어 자체는 단순했어. 근데 그 단순함이 모든 걸 바꿨어.

1930년대 두 겹 마카롱 탄생 - 가나슈로 붙이기

 

두 겹의 꼬끄 사이에 부드러운 버터크림이나 가나슈가 들어가면서, 바삭한 겉면과 촉촉한 속이 동시에 느껴지는 전혀 새로운 식감이 탄생했어. 그리고 필링의 색깔이 꼬끄 색깔과 어우러지면서,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비주얼이 완성됐어. 파리지앵 마카롱, 즉 지금 우리가 아는 그 마카롱이 이때 태어난 거야.


5. 피에르 에르메 — 마카롱을 예술로 끌어올린 사람

라뒤레가 현대 마카롱의 형태를 만들었다면, 피에르 에르메(Pierre Hermé) 는 그걸 예술의 영역으로 끌고 간 사람이야.

 

피에르 에르메는 1961년 알자스의 제과 명가 4대손으로 태어났어. 14살에 프랑스 최고의 파티시에 중 한 명인 가스통 르노트르(Gaston Lenôtre) 의 제자로 들어가 수련을 시작했어. 바로 그 수련 과정에서 마카롱을 처음 만났고, 그 작은 한 입 크기의 과자가 평생의 테마가 됐지.

 

1998년 파리에 자신의 부티크를 열면서 피에르 에르메는 마카롱에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입혔어. 기존 마카롱이 바닐라, 초콜릿, 라즈베리 같은 전통적인 맛에 머물렀다면, 에르메는 이스파한(Ispahan) 을 내놓았어. 장미, 리치, 라즈베리를 조합한 이 마카롱은 재료들 사이의 경계를 허물면서 플로럴한 향이 입안에 퍼지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어.

피에르 에르메 - 이스파한 마카롱 예술

 

그는 화이트 트러플과 헤이즐넛, 올리브 오일과 바닐라, 된장과 초콜릿 같은 조합도 시도했어. 뉴욕 타임스는 그를 “파티스리계의 피카소” 라고 불렀어. 마카롱이 단순한 달콤한 간식을 넘어, 재료와 향의 관계를 탐구하는 매개체가 된 거야.

 

라뒤레가 형태를 완성했다면, 피에르 에르메는 가능성을 폭발시켰어. 지금 전 세계 마카롱 가게들이 기상천외한 맛을 내놓는 건 다 에르메가 그 문을 열었기 때문이야.


6. 한국에서 마카롱이 다시 변신한 이유

마카롱이 한국에 제대로 소개된 건 2010년대 초반이야. 당시 파리 여행 붐이 일면서 라뒤레가 상징적인 파리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고, SNS가 활성화되면서 마카롱의 비주얼이 한국에서도 폭발적으로 퍼지기 시작했어.

 

그런데 한국은 그걸 그냥 따라 하지 않았어.

 

뚱카롱이 등장한 거야. 꼬끄 두 개 사이에 들어가는 필링을 서너 배로 늘린 거야. 파리 마카롱 기준으로 보면 필링이 비정상적으로 두껍지. 정통 마카롱 애호가들은 "원형을 파괴했다"고 했지만, 뚱카롱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어.

한국 뚱카롱 - 풍성한 필링의 재해석

 

왜 한국에서 뚱카롱이 통했을까? 몇 가지 이유가 있어.

 

첫째, 한국 디저트 문화의 “가성비 감각” 이야. 작고 비싼 것보다 크고 가득 찬 것이 더 만족스럽다는 정서. 파리 마카롱 한 개가 3~4유로인데 한 입이면 끝나버리는 허전함을, 뚱카롱은 필링으로 메웠어.

 

둘째, SNS 포토제닉 효과야. 필링이 옆으로 흘러내리는 단면 샷이 인스타그램에서 엄청난 반응을 얻었어. 라뒤레의 작고 앙증맞은 비주얼이 아니라, 필링이 풍성하게 터져나오는 단면이 한국 SNS 감성에 더 잘 맞았던 거야.

 

셋째, 소규모 개인 제과점 문화와 맞닿아 있어. 뚱카롱은 대형 브랜드보다 동네 작은 마카롱 가게들이 이끌었어. 개성 있는 필링과 꼬끄 디자인이 각 가게의 정체성이 됐고, 이것이 수제 디저트 붐과 함께 폭발했어.

 

기원이 이탈리아고, 현대 형태는 프랑스가 만들고, 예술의 경지는 에르메가 열었는데, 한국은 거기서 또 한 번 자신만의 버전을 만들어낸 거야. 어떻게 보면 디저트 역사의 반복이야. 크루아상이 오스트리아에서 프랑스로 건너가 완전히 다른 음식이 됐던 것처럼, 카스테라가 포르투갈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완전히 다른 질감이 됐던 것처럼.

세계 각국의 마카롱 문화

 

음식은 이동하면서 변신해. 그게 음식이 살아있다는 증거야.


7. 그러니까, 마카롱은 머랭의 완성형이야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달걀 편에서 우리는 흰자를 30~40분씩 나뭇가지로 치던 시대부터 이야기했어. 그 힘들게 만든 머랭이 어디로 갔냐면, 결국 마카롱 꼬끄가 된 거야.

 

프렌치 머랭 또는 이탈리안 머랭으로 안정된 거품을 만들고, 아몬드 가루와 섞어서 구우면 그 반들반들하고 살짝 발이 생긴 꼬끄가 완성돼. “발(feet, 피에)” 이라고 부르는 꼬끄 아랫부분의 레이스 같은 테두리는 머랭이 제대로 구워질 때만 생기는 거야. 온도가 틀리거나 머랭 상태가 안 좋으면 발이 생기지 않아. 그래서 마카롱은 제과인들 사이에서 난이도 높은 과자로 꼽혀.

마카롱 꼬끄의 "발(feet)" 구조 분석

 

흰자 거품을 치는 기술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수백 년을 거쳐 아몬드 가루와 만나고, 두 장이 붙여지고, 필링이 다양해지고, 한국에서 또 한 번 두꺼워지면서 오늘에 이른 거야.

 

마카롱 한 개 앞에 이렇게 긴 이야기가 있다는 거, 이제 알겠지?

감성 마무리 - 머랭에서 마카롱까지의 여정

 

다음에 마카롱 먹을 때 꼬끄 안에서 느껴지는 그 살짝 아삭하다가 촉촉해지는 순간, 그게 머랭이 가장 우아하게 변신한 결과야.

오늘도 쫀쿠는 맛있는 모험 중!


함께 읽으면 좋은 쫀쿠 글


참고 자료

  • Laduree Official, “The History of Ladurée” — laduree.com
  • Food & Wine, “The Story Behind Ladurée and Its Famous Macarons”
  • Pierre Hermé Official, “Pierre Hermé Portrait” — pierreherme.com
  • Wikipedia, “Macaron”, “Ladurée”, “Pierre Hermé”
  • 연합뉴스, “뚱카롱 열풍 — 기형적 마카롱 vs 한국적 재해석”, 2019
  • 중앙일보, “뚱카롱 아시나요? 한국에만 있는 뚱뚱한 마카롱”

 

#마카롱 #뚱카롱 #마카롱역사 #라뒤레 #피에르에르메 #이스파한 #마카롱꼬끄 #머랭디저트 #프랑스디저트 #파리디저트 #카트린드메디치 #아몬드쿠키 #한국마카롱 #디저트역사 #제과문화 #쫀쿠 #맛있는디저트 #디저트이야기 #음식역사 #달걀디저트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