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시 스튜, 감자 한 알에 담긴 750년의 이야기
있잖아, 이안박에서 보이콧(boycott) 이야기 읽었어?
1880년 아일랜드, 찰스 보이콧 대위라는 영국인 토지관리인이 소작농들에게 너무 가혹하게 굴다가, 마을 사람들이 그를 완전히 무시하고 거래를 끊어버린 그 사건. 이 사건 하나가 영어에 boycott이라는 단어를 남겼지.

근데 오늘 쫀쿠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보이콧이 왜 그 시점에 그 장소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냐는 거야. 아일랜드 소작농들이 왜 그렇게 지쳐있었는지, 왜 감자 하나에 목숨을 걸어야 했는지. 그리고 그 감자로 끓인 스튜 한 그릇이 어떻게 아일랜드 민족 전체의 상징이 됐는지. 음식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꽤 긴 여행을 하게 될 것 같아. 너무 무겁지 않게 가보자. 🥔
🗺️ 감자는 어디서 왔을까 — 안데스에서 아일랜드까지
감자의 고향은 페루·볼리비아의 안데스 산맥이야. 잉카 문명이 수천 년 전부터 재배한 식물이야. 당시 안데스 고산지대에서는 5,000종이 넘는 다양한 품종이 자랐어. 품종마다 색깔도, 모양도, 맛도 달랐어.

16세기 스페인이 남미를 정복하면서 감자가 유럽으로 건너왔어. 처음엔 유럽 사람들이 별로 안 좋아했어. 땅속에서 자라는 게 뭔가 이상하고, 성경에도 안 나오고. 독이 있다는 소문도 있었어(실제로 감자 잎과 싹에는 솔라닌이 있기도 해). 그래서 처음에는 관상용이나 동물 사료로 쓰였어.
근데 감자가 가진 결정적인 장점이 있었어. 칼로리가 높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같은 면적에서 밀보다 훨씬 많이 생산된다는 것. 배가 고픈 사람들에게 이보다 좋은 작물이 없었어. 18세기로 접어들면서 유럽 전역, 특히 가난한 소작농들 사이에서 감자가 주식으로 자리 잡았어. 그리고 어느 나라보다 더 깊이, 더 절박하게 감자에 의존한 나라가 하나 있었으니 — 바로 아일랜드였어.
⛓️ 왜 아일랜드만 그렇게 감자에 목숨을 걸었나
아일랜드 소작농이 감자에 의존하게 된 건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었어. 잉글랜드의 750년 지배가 그들을 그쪽으로 몰아갔어.

12세기 헨리 2세 때부터 잉글랜드는 아일랜드를 지배하기 시작했고, 17세기에 더 깊어졌어. **올리버 크롬웰(1649~1653년)**이 아일랜드를 무력으로 재정복하면서, 가톨릭 아일랜드인들의 토지를 빼앗아 영국 개신교 이주민들에게 나눠줬어. 이후 18세기에는 **형벌법(Penal Laws)**이 가톨릭 신자들에게 적용됐어. 토지를 사거나 상속받을 수 없고, 교육도 제한되고, 공직에도 오를 수 없었어. 인구의 90%가 가톨릭이었던 아일랜드에서, 가톨릭 신자들이 소유한 땅은 전체의 10% 미만이었어.
나머지는 잉글랜드에서 온 지주(landlord)의 땅이었고, 아일랜드 농민들은 그 땅을 빌려 농사짓는 소작농(tenant farmer)이었어. 좋은 땅에서 나는 밀, 보리, 귀리는 지주가 가져가고 영국으로 수출됐어. 소작농들에게 남은 건 돌밭, 습지, 경사지. 그나마 그런 땅에서도 충분히 자라는 작물이 감자였어. 결국 아일랜드 소작농들은 감자 없이는 겨울을 날 수 없는 구조 속에 갇혀있었어. 선택이 아니라 구조가 만든 의존이었어.
🦠 1845년, 역병이 왔어
1845년 여름, 아일랜드 전역의 감자밭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어. 멀쩡해 보이던 감자가 땅속에서 까맣게 썩어가고 있었어. 범인은 피토프토라 인페스탄스(Phytophthora infestans) — 감자 역병균이야.

이 역병은 1843년 미국 동부 항구 도시에서 처음 보고됐고, 3년에 걸쳐 유럽으로 퍼져나가 1845년 아일랜드를 강타했어.
문제는 아일랜드 감자의 99%가 **아이리시 럼퍼(Irish Lumper)**라는 단일 품종이었다는 거야. 유전적으로 모두 같았어. 한 그루가 역병에 걸리면, 옆 그루도, 다음 밭도, 다음 마을도 모두 같은 방식으로 무너졌어. 다양성이 없으면 하나의 병에 모두 쓰러지는 거야.
안데스에서는 수천 종의 감자가 자랐는데, 유럽으로 건너오면서 그 다양성을 잃어버렸어. 지금 식량 안보 전문가들이 "단일품종 의존의 위험"을 이야기할 때 항상 등장하는 사례가 바로 아일랜드 대기근이야.
역병은 1845년부터 1852년까지 반복됐어. 기근이 시작됐어.
😢 대기근(An Gorta Mór) — 아일랜드어로 "큰 굶주림"
기근으로 100만 명이 사망했고, 그만큼 많은 수가 이민을 강요당했으며, 총 인구 감소는 25%였어. 기근 전 아일랜드 인구는 약 840만 명이었는데, 1851년엔 660만 명으로 줄었어. 불과 6~7년 사이에.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과 캐나다로. 이 배들을 당시 사람들은 **"관棺선(Coffin Ships)"**이라고 불렀어. 이미 몸이 약해진 사람들이 비위생적인 화물선에 가득 실렸고, 대서양 항해 중 사망률이 최대 **30%**에 달하는 배도 있었어.
그리고 여기서 가장 씁쓸한 역사 하나. 감자가 썩어가고 사람들이 굶어 죽던 그 시간에도, 아일랜드에서 영국으로의 곡물 수출은 계속됐어. 좋은 땅의 밀과 보리는 지주의 소유였고, 시장 논리에 따라 영국으로 팔려나갔어. 역사가들 사이에서 지금도 논쟁이 있지만, 영국 정부의 구호가 너무 늦고 너무 작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야.
이 대기근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야. 구조적 불평등이 자연재해를 비극으로 증폭시킨 사건이야.
🤝 촉토 네이션의 $170, 그리고 173년 뒤
여기서 잠깐,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 하나.

1847년, 대기근이 한창일 때 미국 촉토(Choctaw) 원주민 네이션이 아일랜드 기근 구호금으로 170달러를 보냈어. 지금 가치로 약 5,000달러 정도야. 촉토족은 불과 16년 전인 1831년에 **"눈물의 행진(Trail of Tears)"**으로 자기 고향 땅에서 강제로 쫓겨난 민족이었어. 가진 것도 거의 없던 그들이, 바다 건너 굶어 죽는 사람들을 위해 모을 수 있는 돈을 모은 거야. 고통을 알기 때문에.
아일랜드 사람들은 이걸 잊지 않았어. 2020년 COVID-19로 **나바호 네이션(Navajo Nation)**이 어려움을 겪자, 아일랜드 사람들이 온라인 모금 캠페인에 몰려들었어. 총 180만 달러 이상이 모였어. *"173년 전 촉토 네이션이 우리에게 준 것을 돌려드린다"*는 메시지와 함께.
달라진 게 있다면, 이번엔 아일랜드가 보내는 쪽이었어.
🌎 이민자들이 미국을 바꿨어
관棺선을 타고 살아남아 미국에 도착한 아일랜드 이민자들은 뉴욕과 보스턴에 내렸어. 아무것도 없이. *"아일랜드인 지원 사절(No Irish Need Apply)"*이라는 구인 광고가 공공연히 붙어있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럼에도 그들은 살아남았고, 뿌리를 내렸어. 1910년에는 뉴욕에 더블린보다 많은 아일랜드인이 살았어. 세대가 지나면서 그들은 소방관이 됐고, 경찰관이 됐고, 정치인이 됐어. 그리고 1961년, 아일랜드 이민자 후손인 존 F. 케네디가 미국 대통령이 됐어.
매년 3월 17일 성 패트릭의 날(St. Patrick's Day), 전 세계에서 녹색 옷을 입고 아이리시 맥주를 마시는 그 축제는, 사실 미국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만들어낸 문화야. 아일랜드 본국에서는 원래 종교적 기념일이었는데, 미국 아이리시들이 "우리가 여기 있다"는 표시로 키워나간 거야.
🍲 아이리시 스튜 — 가난에서 태어난 위로
자, 이제 음식으로 돌아와.

**아이리시 스튜(Irish Stew)**는 복잡한 역사를 가진 단순한 음식이야. 재료가 딱 세 가지야. 양고기(특히 목살 mutton), 감자, 양파. 여기에 당근이 들어가기도 하고, 물이나 육수로 오래 끓이는 게 전부야.
왜 양고기냐고? 소는 너무 비쌌어. 돼지는 팔아서 집세를 내는 데 썼어. 양은 새끼를 낳아 불어나고, 털도 팔 수 있고, 다 쓸모없어지면 그때 먹는 거야. 그래서 전통 스튜는 양의 목살(neck), 즉 가장 질기고 싼 부위를 써. 오래 끓이면 질긴 근육이 풀어지면서 국물이 깊어지고, 감자가 녹아들면서 걸쭉해지고, 양파가 단맛을 내줘.
요리법도 따로 배울 게 없었어. 냄비에 넣고, 물 붓고, 불에 올려두면 됐어. 밭에 나가 있는 동안 알아서 익어있는 스튜는 최고의 음식이었어.
🥔 집에서 만드는 아이리시 스튜
재료가 없어도, 복잡한 기술이 없어도 돼. 오래 끓이는 게 전부야.
재료 (4인분 기준)
재료 분량 메모
| 양고기 목살(lamb/mutton neck) | 700~800g | 없으면 소고기 목심으로 대체 가능 |
| 감자 | 5~6개 (중간 크기) | 분질감자(포슬포슬한 종류) 추천 |
| 양파 | 2개 | 큼직하게 썰어 |
| 당근 | 2개 | 선택 사항 |
| 물 또는 육수 | 1리터 | 치킨 스톡 또는 물 |
| 소금, 후추 | 적당히 | |
| 타임(thyme) | 2~3줄기 | 선택 사항, 말린 것도 가능 |
만드는 법
- 양고기를 한 입 크기(약 4~5cm)로 잘라,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해. 5~10분 두면 돼.
- 냄비에 기름 조금 두르고 중강불에서 고기 겉면을 골고루 구워. 갈색이 날 때까지 — 마이야르 반응이 이 스튜의 풍미를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이야.
- 고기를 구운 냄비에 양파를 넣고 2분 정도 볶아.
- 물 또는 육수 1리터를 붓고, 감자와 당근을 넣어. 큼직하게 토막 낸 거. 타임도 넣어.
- 끓어오르면 불을 약하게 줄이고 1시간 30분~2시간 뚜껑 덮고 푹 끓여. 중간에 한 번 저어주고, 떠오르는 거품은 걷어내.
- 감자가 충분히 익어 스튜가 걸쭉해지면 완성. 소금으로 간 맞추고, 파슬리 조금 얹으면 끝이야.
쫀쿠 팁 🥔
- 전통 방식은 중간에 루(roux, 버터+밀가루 볶은 것) 없이 감자 자체가 녹아서 걸쭉하게 만들어. 뭔가 넣고 싶은 충동을 참는 게 핵심이야.
- 양고기가 구하기 어려우면 소고기 목심으로 대체해도 충분히 맛있어.
- 다음 날 더 맛있어. 넉넉하게 만들어서 이틀 먹는 걸 추천해.
이안박에서 보이콧 이야기를 읽었다면 → [이안박 — 보이콧(boycott), 한 농장관리인의 이름이 동사가 된 이유]에서 이 글의 배경이 된 1880년 아일랜드 이야기를 읽어봐. 이 글의 짝꿍이야.
단일품종 의존의 위험을 더 알고 싶다면 → 이야기 팬트리 — 옥수수도 종류가 있다고? 스위트콘, 팝콘, 사료 옥수수의 각자도생 이야기에서 글래스 젬 콘 복원 운동 이야기를 읽어봐. 아일랜드 럼퍼 감자와 정확히 같은 이야기야.
🍀 마무리: 한 그릇 속에 담긴 것들
"안데스의 수천 종 감자" → "영국 지주의 자투리 땅" → "럼퍼 단일품종의 비극" → "관棺선의 대서양" → "뉴욕 골목의 새 시작"
아이리시 스튜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다음에 스튜 냄비를 불에 올릴 때, 이렇게 한 번 생각해봐:
"이 감자가 안데스에서 왔고, 아일랜드 소작농의 유일한 식량이었구나." "단일품종 하나가 1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구나." "촉토족이 돈을 보냈고, 아일랜드가 173년 뒤에 갚았구나."
아이리시 스튜는 단순한 양고기 국물이 아니야. 750년의 식민 지배, 100만 명의 죽음, 200만 명의 이민, 그리고 살아남아 대서양 건너에서 다시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 그릇에 담긴 거야. 감자 한 알, 양고기 한 조각, 그리고 오래 끓이는 기다림. 그 조합이 오늘도 누군가의 냄비 안에서 천천히 익어가고 있어.
너희가 아이리시 스튜 만들어 먹어봤어? 댓글로 알려줘! 쫀쿠는 오늘도 양고기 목살 구하러 정육점 기웃거리는 중 🥔✨ 다음 모험에서 또 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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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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