쫀쿠의 밥상 이야기 9 — 배추, 너는 언제부터 속이 찼니
올봄 식탁에 심상치 않은 채소가 깔렸어.
유튜브, 인스타그램, 방송 여기저기서 갑자기 봄동 겉절이가 등장했어. "고기보다 맛있네요", "설탕보다 달다", "이게 배추라고?" — 반응들이 심상치 않아.

근데 봄동이 뭔지 아는 사람이 생각보다 적어. 봄동은 특별한 품종이 아니야. 그냥 일반 결구배추야. 단지 겨울 추위 속에 노지(露地)에서 자라다 보니 속이 꽉 차지 못하고 잎이 납작하게 땅 쪽으로 퍼진 것뿐이야. 우리가 김장에 쓰는 그 배추가, 다른 환경에서 자라면 봄동이 되는 거지.
그리고 여기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시작돼. 지금 우리가 "배추"라고 당연하게 부르는 그 꽉 찬 속 — 사실 그게 우리나라에 자리 잡은 건 100년도 채 안 됐어. 조상들이 수백 년간 먹었던 배추는, 지금 우리가 "봄동"이라 부르는 그 납작한 형태에 더 가까웠어.
🥬 조선 배추의 진짜 얼굴 — 반결구, 그리고 봄동
『삼재도회(三才圖會)』(1607)라는 중국 백과서에 그려진 배추 그림을 보면 지금의 결구배추와 전혀 달라. 순무에 가까운 형태, 잎이 옆으로 퍼진 모습. 그게 조선시대까지 우리나라에서 자라던 배추의 원형이었어.

조선 배추는 크게 두 종류였어. **산동배추(불결구)**는 아예 속이 차지 않고 잎이 쫙 펼쳐지는 형태였고, **개성배추(반결구)**는 잎이 절반쯤 오므라드는 형태였어. 개성배추는 보쌈김치용으로 유명했고, 한양의 혜화동 근방 배추도 이 반결구 형태로 명성이 있었어.
납작하고 펼쳐진 이 배추들. 지금의 봄동이 바로 이 형태야. 봄동이 유행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의미에서는 조선 배추가 잠깐 귀환한 거야. 겨울 추위에 납작하게 눌린 배추 한 포기 — 그게 사실 조상들이 수백 년간 먹어온 배추의 모습이었어.
❄️ 봄동, 왜 이렇게 달까 — 추위의 역설
봄동이 맛있는 이유는 오히려 추웠기 때문이야.

배추는 기온이 내려가면 세포 안의 전분을 당으로 전환해. 얼지 않기 위해 세포액의 당도를 높여 어는점을 낮추는 거야. 식물 나름의 부동액 전략이랄까. 그 결과 봄동은 일반 결구배추보다 당도가 훨씬 높아. "설탕보다 달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이유야.
거기에 잎이 펼쳐진 형태이기 때문에 날것으로 먹기 좋아. 두껍고 꽉 찬 결구배추는 절여야 맛이 나지만, 봄동은 살짝 무쳐서 겉절이로 바로 먹을 수 있어. 단맛 + 아삭함 + 쌉쌀한 뒷맛. 올봄 유행의 이유가 여기 있어. 새로운 게 아니라, 오래된 게 재발견된 거야.
🇨🇳 호배추의 침략 — 결구배추가 밀고 들어와
1800년대 중반, 조선에 낯선 배추가 들어오기 시작했어. 중국에서 건너온 결구배추, 이른바 **호배추(胡배추)**야. 중국과 조선을 오가던 상인들이 귀국할 때 짐 속에 종자를 넣어 온 것이 퍼져나갔어.

호배추는 확실히 달랐어. 속이 꽉 찼고, 잎이 많고, 수확량이 기존 조선 배추보다 훨씬 많았어. 김장용으로 쓰기에 딱이었지. 조선총독부는 이 호배추의 높은 수확량을 보고 적극적으로 재배를 장려했어.
결과적으로 20세기 초, 개성배추와 산동배추 같은 조선 전통 배추들은 서서히 뒷방으로 밀려났어. 더 크고, 더 많이 나고, 더 꽉 찬 배추가 김장 밭을 장악해 나갔어. 근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어. 호배추는 우리나라 기후에 완전히 맞지 않았고, 품종도 고르지 않았어. 김장김치의 품질이 들쑥날쑥했지.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등장하는데 — 그가 바로 우장춘이야.
🌏 매국노의 아들이 배추를 구했어 — 우장춘의 이야기
우장춘(禹長春, 1898~1959). 이 이름 앞에는 늘 복잡한 수식어가 붙어.
아버지 **우범선(禹範善)**은 1895년 을미사변, 즉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조선인이었어. 일본 낭인들과 일본 공사 미우라가 계획한 그 사건에서 조선인 중 핵심적 역할을 했던 인물. 우범선은 사건 이후 일본으로 도망쳐 일본 여성 사카이 나카와 결혼했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우장춘이었어. 도쿄에서 태어난 우장춘이 6살이던 1903년, 아버지는 조선 의사(義士) 고영근에게 암살당했어.
아버지를 잃은 그는 극심한 빈곤과 차별 속에서 자랐어. 일본인도 조선인도 아닌 어정쩡한 자리에서. 도쿄제국대학 농학실과를 다니며 육종학에 빠져들었고, 농림성 농사시험장에 취직해 연구에 매달렸어. 출세는 어려웠어. 조선인의 피가 섞인 그를 일본 사회는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았어. 만년 기수(技手) 자리에 머물렀지.
그는 연구로 승부를 걸었어.
🔬 종의 합성 — 다윈도 몰랐던 것을 증명하다
1935년, 우장춘은 세계 육종학계를 뒤흔드는 논문을 발표했어. "종의 합성(Genome Synthesis)" 이론이야.

그가 증명한 건 이래. 염색체 수 10개인 배추와 염색체 수 9개인 양배추를 인공 교배하면, 자연계에 이미 존재하는 염색체 수 19개의 유채를 만들 수 있다는 거야. 즉, 종이 달라도 게놈(유전체) 합성을 통해 새로운 종을 인공적으로 탄생시킬 수 있다는 것.
이건 단순한 교배 실험이 아니었어. 다윈의 진화론은 새로운 종은 오랜 자연 선택을 통해서만 나온다고 했어. 우장춘은 실험실에서 직접 새로운 종을 만들어내며 "종은 인공적으로도 합성될 수 있다"는 걸 증명했어. 진화론을 수정한 거야. 이 논문은 지금도 **"우장춘 트라이앵글(U's Triangle)"**이라는 이름으로 육종학 교과서에 실려 있고, 외국 과학자들이 배추속 연구를 발표할 때마다 서두에 인용하는 논문이야.
1936년, 그는 도쿄제국대학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어. 같은 시기 임호식 박사가 논문 통과는 더 늦었지만 학위 수여일이 빨라서, 우장춘은 한국인 두 번째 농학박사가 됐어. 세계적 명성을 얻었지만, 여전히 일본에서 그의 자리는 불안했어.
✈️ 1950년, 처음으로 밟은 고국 땅
1947년, 해방된 조국에서 "우장춘 박사 환국 추진 위원회"가 만들어졌어. 식량난을 겪던 지식인들이 그의 귀국을 추진하는 운동이었어. 모금된 돈으로 그는 육종 서적과 실험 기구, 한국에 심을 종자들을 사 모았어.

1950년 3월, 우장춘은 단신으로 아버지의 조국, 한국 땅을 밟았어. 일본인 아내와 자녀들은 일본에 남겨둔 채였어. 6·25 전쟁이 터지기 직전이었지. 그때까지 그는 한 번도 한국에 와본 적이 없었고, 한국어도 거의 이해하지 못했어.
"돌아와줘서 고맙다." 이승만 대통령의 메시지가 환영회에서 전해졌어.
그가 자리 잡은 곳은 부산. 피란민들이 가득했던 그 부산에서, 그는 중앙채소육종연구소(현 원예시험장)를 세우고 배추 연구를 시작했어.
전쟁 직후 우리나라는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어. 배추 품종은 고르지 않았고 수확량도 들쑥날쑥이었지. 그는 일대잡종(F1) 기술을 활용해 우리 기후에 맞는 배추 품종을 개량했어. 1954년, 원예 1호가 세상에 나왔어. 추위에 강하고 수확량이 많고 맛도 좋은, 한국 최초의 일대잡종 결구배추였어.

지금 우리가 11월에 김장 배추를 사면서 당연하게 보는 그 꽉 찬 배추 포기 — 그 배추의 시작이 원예 1호야. 우장춘 박사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의 김장은 다른 모습이었을 거야.
1959년 8월 7일, 서거하기 3일 전 그는 병상에서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어. 그때 남긴 마지막 인사가 이거였어.
"조국이 나를 인정해줘서 고맙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랐지만, 마지막 9년을 조선의 배추밭에서 보낸 사람. 일본인 어머니의 장례식조차 가지 못한 채 멀리서 눈물만 훔쳐야 했던 사람. 부산 우장춘기념관 마당에는 그가 직접 만든 우물 '자유천(慈乳泉)'이 있어. '자애로운 어머니의 젖과 같은 샘'이라는 뜻이야.
🌱 봄동 겉절이와 조선 배추의 귀환
그래서 올봄 봄동 겉절이 유행이 새삼 흥미로워.
꽉 찬 결구배추가 표준이 된 지 70년이 됐어. 그 사이 조선 전통 배추의 형태 — 납작하고 펼쳐지고 날것으로 먹기 좋은 — 는 "봄동"이라는 계절 채소로 남아 있었어. 근데 그게 갑자기 유행해. 건강식, 저당도 트렌드, 자연식 열풍이 맞물리면서 가공되지 않은 날배추의 맛이 재발견된 거야.
조선 배추가 돌아왔어. 우장춘이 만든 배추가 대세인 세상에서, 우장춘이 오기 전에 먹던 배추의 형태가 트렌드가 된 거지. 뭔가 아이러니하고, 뭔가 자연스러워.
밥상 이야기 — 김치, 빨개지기까지 3,000년이나 걸렸다고?에서 고추가 400년 만에 빨간 혁명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를 했잖아. 배추 이야기는 그 혁명의 재료 자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의 이야기야.
잡곡밥이 가난의 밥에서 건강의 밥이 된 비슷한 역전 이야기 → 밥상 이야기 — 잡곡밥, 가난의 밥이 건강의 밥이 되기까지에서도 읽어봐.
🥬 마무리: 배추 한 포기의 무게
"반결구 조선 배추" → "중국발 호배추의 침공" → "매국노 아들의 종의 합성" → "1954년 원예 1호의 탄생"
배추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다음에 봄동 겉절이 한 젓가락 집어 들 때, 이렇게 한 번 생각해봐:

"이 납작한 배추가 사실 조상들이 수백 년간 먹던 원래 형태구나." "꽉 찬 배추가 100년도 안 된 발명품이었구나." "매국노의 아들이 만든 종자가 우리 김장을 완성했다는 게 아이러니하구나."
배추는 단순한 채소가 아니야. 반결구에서 결구로, 조선에서 호배추로, 그리고 매국노의 아들이 평생을 바쳐 만든 원예 1호로 — 100년의 격변을 담은 이야기야. 잎 한 장, 종자 한 톨, 그리고 한 과학자의 평생. 그 조합이 오늘도 우리 김장독 안에서 익어가고 있어.
다음 편에서는 그 배추와 고추가 만나는 날 — 김장으로 갈게. 🥬
너희가 제일 좋아하는 봄동 요리나 배추 요리는 뭐야? 댓글로 알려줘! 쫀쿠는 오늘도 봄동 겉절이에 고추장 넣을지 말지 고민 중 🥬✨ 다음 모험에서 또 만나! 📚✨
오늘도 쫀쿠는 맛있는 모험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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