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타운 시리즈 5편 — 하이난에는 없는 하이난 치킨라이스: 중국인도 말레이인도 아닌 사람들이 만든 음식
있잖아, 말레이어에 이런 표현이 있어.
"Orang Cina bukan Cina" — "중국인인데 중국인이 아닌 사람."

싱가포르 편을 시작하면서 이 문장부터 꺼내는 이유가 있어. 지금까지 샌프란시스코·요코하마·나가사키·인천, 네 도시를 거쳐왔잖아. 전부 "이주민이 현지인에게 자기 음식을 팔았다"는 이야기였어. 그런데 싱가포르는 달라. 여기선 이주민이 현지인과 결혼했고, 그 결과 아예 새로운 정체성이 생겼어. 중국인도 아니고 말레이인도 아닌, 그 둘 사이 어딘가.
오늘은 그 사람들 이야기야.
페라나칸은 언제 시작됐을까 — 1819년이 아니다
싱가포르 이야기를 하면 보통 1819년 래플스의 개항부터 시작하고 싶어져. 그런데 페라나칸의 뿌리는 그보다 훨씬 앞서, 15세기 말라카로 거슬러 올라가.

명나라가 말라카 술탄국과 교역을 재개하면서 복건·광동 출신 중국 상인들이 말라카에 정착하기 시작했어. 이 남성 상인들이 현지 말레이 여성과 결혼하면서 형성된 집단이 페라나칸의 시작이야. 여기엔 유명한 기원 신화도 있어. 1459년 명나라 황제가 말라카 술탄에게 공주 항 리 포(Hang Li Po)를 시집보냈고, 그녀를 수행한 500명이 정착해 페라나칸의 뿌리가 됐다는 이야기. 로맨틱하지만, 현대 역사학자들은 이 이야기가 말레이 연대기가 만들어낸 허구일 가능성이 크다고 봐. 실제로는 훨씬 산문적이야 — 중국 남성 상인들이 혼자 이주했으니 현지 여성과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
1819년 래플스의 싱가포르 개항은 페라나칸의 탄생점이 아니라, 이미 400년 가까이 자리 잡은 말라카·페낭의 페라나칸 커뮤니티가 새 무역 거점으로 이동해온 계기였어. 싱가포르는 페라나칸 역사의 시작이 아니라 두 번째 무대인 셈이야.
바바와 뇨냐, 그리고 사라져가는 언어
페라나칸 남성은 바바(Baba), 여성은 **뇨냐(Nyonya)**라고 불러. 이 이름들의 어원도 흥미로워. 바바는 원래 페르시아·힌디어에서 말레이어로 들어온 말로, "어른에 대한 애칭"으로 쓰이다가 화교 남성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굳어졌어. 뇨냐는 포르투갈어 donha(귀부인)에서 온 말이 말레이어에 들어와, 처음엔 외국 여성 전체를 가리키다가 점차 페라나칸 여성에게 특정된 거야.

이 커뮤니티가 쓰는 언어가 **바바 말레이어(Baba Malay)**인데, 단순한 말레이어 방언이 아니야. 말레이어 문법에 복건어(호키엔) 어휘가 대거 섞인 크리올어로 분류돼. 그리고 지금은 주로 고령층만 쓰는 소멸 위기 언어야. 음식만이 아니라 언어에서도 이 정체성이 지금 사라져가고 있다는 거지.
여기서 흥미로운 반전 하나. 2021년 페라나칸 대상 유전자 연구는 이들의 말레이 조상 비율이 평균 5~10%에 그친다는 걸 확인했어. 수백 년 혼혈의 결과치고는 낮은 수치야. 초기 이후엔 페라나칸끼리 결혼하며 중국계 유전자를 더 많이 유지한 걸로 보여. 문화적으로는 중국과 말레이가 섞였지만, 유전적으로는 중국에 더 가까운 — 로맨틱한 기원 서사와 냉정한 데이터 사이의 이 긴장이야말로 페라나칸을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할 수 없게 만드는 지점이야.
뇨냐 요리 — 중국의 손맛과 말레이의 향신료
뇨냐 요리는 중국식 조리법에 말레이·인도네시아식 향신료가 결합한 결과야. 코코넛밀크(산탄), 라임잎, 벨라찬(새우 발효 페이스트), 강황 같은 재료들이 중국식 볶음·찜 기법과 만났어.

대표 사례가 **락사(Laksa)**야. 그런데 이 이름의 어원부터가 아무도 확실히 몰라. 힌디어·페르시아어의 lakhsha(국수)에서 왔다는 설, 말레이어 기원설, 산스크리트어 기원설이 서로 경쟁해. 어원조차 하나로 정리가 안 된다는 것 자체가, 이 음식이 얼마나 여러 문화의 교차점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 같아.
지역 변형도 재밌어. 싱가포르 카통 락사(Katong Laksa)는 코코넛밀크 베이스에 면을 짧게 잘라 숟가락으로 떠먹고, 페낭 아삼 락사(Assam Laksa)는 타마린드 베이스에 생선 육수를 써서 완전히 다른 음식처럼 느껴져. 같은 이름인데 이렇게 다른 두 요리라니 — 해선장 편에서 얘기했던 "이름의 역설" 테마가 여기서도 반복돼.
하이난에는 없는 하이난 치킨라이스
싱가포르의 국민 음식이라 하면 다들 하이난 치킨라이스를 떠올려. 그런데 정작 하이난 본토엔 이 요리가 없어.
최초 판매 시점엔 두 가지 설이 있어. 하나는 **왕이위안(王义元)**이 1920년대에 바나나 잎에 싼 치킨라이스 볼을 행상으로 팔았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1940년대 일제강점기 무렵 영국군 고용을 잃은 하이난 출신 요리사들이 생계를 위해 팔기 시작했다는 설이야. 이 중 Swee Kee의 창업자 모 리 트웨이(Moh Lee Twee)가 왕이위안의 제자였고, 홍콩 음식평론가 차이람이 그를 이 요리의 "창시자"로 인정했다는 이야기도 있어. 두 설이 충돌한다기보다 행상에서 상설 가게로 발전하는 과정의 서로 다른 지점을 가리킨다고 보는 게 맞을 거야.

하이난 본토의 원형 요리는 **원창치킨(文昌鸡)**인데, 돼지뼈와 닭뼈로 낸 맑은 육수에 닭을 삶는 방식이야. 반면 싱가포르 버전은 닭 지방·생강·판단잎을 넣어 쌀을 볶고 밥을 짓는 완전히 다른 조리법을 발전시켰어. 육수도, 쌀 조리법도, 소스 구성도 달라. 이름은 하이난인데 레시피는 싱가포르의 창작물인 거야.
이 이름을 둘러싸고 지금도 이어지는 갈등이 있어. 2009년 말레이시아 관광장관이 "하이난 치킨라이스는 말레이시아 고유 음식인데 싱가포르가 가져갔다"고 발언하면서 논란이 일었어. 음식의 소유권을 둘러싼 국가 간 신경전이 지금도 진행형이라는 거야.
호커센터 — 거리에서 쫓겨난 노점이 유네스코 유산이 되기까지
싱가포르 음식 이야기에서 호커센터(Hawker Centre)를 빼놓을 수 없어. 이 공간의 역사는 아이러니로 가득해.

시기 사건
| 1950~60년대 | 거리 행상 성행, 위생·교통 문제로 당국과 갈등 |
| 1968~69년 | 정부가 전국 거리 행상을 전수 등록, 임시 면허 발급 |
| 1970년대 | 이동 행상을 고정 건물로 강제 이전하는 정책 추진 |
| 1971년 | 최초 공식 호커센터 개장 |
| 1980년대 | 거리 행상 대부분이 호커센터로 재배치 완료 |
| 2020년 | "싱가포르 호커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
거리에서 강제로 밀려난 노점상들이었는데, 그 결과물이 지금은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유산이 됐어. 여기엔 더 깊은 맥락이 있어. 리콴유 정부의 다민족 통합 정책이 호커센터와 직접 연결돼 있었어. 각 민족이 자기 구역에만 모여 사는 걸 막기 위해, 정부는 공공주택 단지 안에 중국·말레이·인도·유라시안 음식 가판대를 의도적으로 나란히 배치했어.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이걸 이렇게 표현했어. "호커센터는 아마 싱가포르에서 사람들이 다른 민족의 음식을 처음 먹어보는 장소일 것이다." 강제된 공간 배치가 결과적으로 자발적인 문화 교류의 장이 된 셈이야.
차이나타운이 있는데, 페라나칸은 거기 없었다
이 편에서 가장 흥미로운 역설을 마지막에 놓을게. 싱가포르에는 실제로 차이나타운(牛车水, 우탄파사르)이 있어. 그런데 이 차이나타운은 페라나칸의 공간이 아니었어.
래플스의 1822년 인구 구역 지정에 따라 페라나칸들은 캄퐁 글람 인근이나 고급 상업지구에 주로 자리 잡았어. 영어를 구사하고 영국 법에 익숙하며, 식민 행정과 가까운 중간 계층 역할을 했거든. 오히려 뒤늦게 이민 온 노동계급 중국인들 — 신커(Sinkeh) — 이 우탄파사르, 지금의 차이나타운에 정착했어.
그러니까 이 시리즈에서 "싱가포르 편"의 핵심은 차이나타운 안이 아니라 밖에 있는 거야. 지도 위에 뚜렷이 표시된 차이나타운보다, 그 바깥 어딘가에서 조용히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편의 진짜 주인공이야.
마무리 — 차이나타운 없이도 만들어진 정체성
중국 남성이 말레이 여성과 결혼했고, 그 사이에서 중국인도 말레이인도 아닌 사람들이 태어났어. 이름은 하이난인데 레시피는 싱가포르였고, 이름의 어원조차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는 국수 한 그릇이 국민 음식이 됐어. 차이나타운은 지도 위에 있었지만, 진짜 이야기는 그 밖에서 자라났어.

너희는 하이난 치킨라이스나 락사 먹어본 적 있어? 어떤 맛이었는지 궁금해! 🍚✨
오늘도 쫀쿠는 맛있는 모험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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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 예고 — 차이나타운 시리즈 6편, 시드니로 갑니다. 호주판 골드러시와 딤섬이 현지화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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