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타운 시리즈 8편 — 홍쿠버(Hongcouver): 홍콩 반환이 밴쿠버와 토론토를 바꾼 방법
있잖아, 지금까지 골드러시(경제), 국가가 부른 노동자(강제), 인도차이나 난민(탈출)까지 봤잖아.
오늘은 네 번째 유형이야. 정치적 불확실성 앞에서, 자산과 교육과 가족을 통째로 옮긴 중산층의 이주.
1984년 12월 19일, 영국과 중국이 중영공동선언에 서명했어. 1997년 7월 1일에 홍콩을 중국에 반환한다는 일정이 확정된 거야. 이 외교문서 한 장이 홍콩 중산층에게는 가족과 자산, 자녀 교육, 여권의 안전성을 다시 계산하게 만든 날짜표가 됐어.
1997년이라는 카운트다운
이민이 1984년 직후부터 갑자기 폭발한 건 아니야. 실제로 크게 늘어난 건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이었어. 1984~1997년 사이 캐나다로 이주한 홍콩인은 약 33만~34만 명으로 추정되고, 정점이었던 1994년엔 자료에 따라 한 해에만 4만4천~4만8천 명이 이동했어.

이걸 그냥 "공포가 만든 탈출"이라고만 부르면 절반짜리 설명이야. 실제로는 여러 동기가 겹쳐 있었어. 1997년 이후 제도 변화에 대한 불안이 컸던 건 맞지만, 여기에 자녀의 영어권 교육, 캐나다 여권의 안전성, 사업 자산의 국제화, 홍콩의 치열한 노동시장과 높은 주거비까지 함께 작용했어. 그리고 이민자 전체를 부유한 자산가로 뭉뚱그리면 안 돼 — 투자이민자와 전문직뿐 아니라 학생, 가족 이민자, 소규모 자영업자도 함께 움직였거든. 1990년대 홍콩 이민은 '부자들의 탈출'이면서 동시에, 가족의 미래를 여러 나라에 분산시키려는 중산층 전체의 전략이었어.
캐나다가 문을 연 방식 — 투자이민 프로그램

캐나다는 1986년 투자이민 프로그램(IIP)을 도입했어. 이건 홍콩·대만만을 겨냥해 설계된 제도는 아니었어 — 전 세계 사업 경험자와 자본을 유치하려는 목적이었지. 다만 실제 신청자 중 홍콩·대만 출신 비중이 압도적이었던 건 사실이야. 1986~1998년 투자이민으로 영주권을 취득한 약 1만6,667명 중 거의 80%가 홍콩과 대만 출신이었다는 자료가 있어.
이민은 개인의 선택이었지만, 그 문을 이렇게 넓게 열어둔 건 캐나다 정부의 경제 설계였어. 다만 이 제도엔 논쟁도 따라붙었어. 투자금이 실제로 얼마나 고용으로 이어졌는지, 일부 투자자가 캐나다에 실제 정착하지 않고 영주권만 확보한 건 아닌지, "돈을 가진 사람에게 여권을 파는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홍콩 이민자 전체를 투자이민자로 뭉뚱그려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어.
홍쿠버, 환영과 반감이 같이 담긴 이름
"홍쿠버(Hongcouver)"라는 별명은 1980~90년대 밴쿠버 사람들이 도시가 홍콩처럼 변해간다고 느끼며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신조어야. 사실 밴쿠버 차이나타운은 홍콩 이민 이전부터 이미 존재했어. 1858년 프레이저 강 골드러시 때부터 광동 출신 화교가 정착했고, 밴쿠버 차이나타운은 1880년대에 형성돼서 지금은 캐나다 국립사적지로 지정돼있어. 그러니까 홍콩 이민 물결은 이 기존 차이나타운을 확장했다기보다는, **리치몬드(Richmond)**를 비롯한 교외 지역에 완전히 새로운 상업·주거 공간을 만들어낸 거야.

1989년, 홍콩 자본가 토마스 펑(Thomas Fung)이 리치몬드에 애버딘 센터(Aberdeen Centre)를 열었어. 홍콩계 이민자와 아시아계 소비자를 겨냥한 대형 실내 상업공간이었지 — 다만 이 초기 건물은 이후 철거·재개발됐고, 지금 있는 건물은 2000년대 초 재건된 시설이야. 리치몬드는 사실상 새로운 홍콩식 교외 도시가 됐어.
여기서 짚고 싶은 게 있어. '홍쿠버'는 중립적인 지명이 아니었어. 어떤 사람에게는 홍콩식 음식·언어·쇼핑이 정착한 다문화 도시의 이름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이민과 외국 자본 때문에 익숙한 도시가 바뀐다는 불안의 표현이기도 했어. 같은 단어가 환영과 반감을 동시에 담고 있었던 거야.
몬스터 하우스 — 집이 곧 논쟁이었다
홍콩 이민자들이 가져온 건 사람만이 아니라 건축 취향도 함께였어. 밴쿠버 교외의 빅토리아풍 목조주택을 철거하고, 큰 창문과 높은 층고, 화강암 마감의 저택을 지었어. 이게 언론과 이웃들 사이에서 "몬스터 하우스(monster house)"라고 불리게 됐어. 1991년 뉴욕타임스는 "유럽계 가정이 큰 집을 지으면 저택(estate)이라 부르고, 중국계 가정이 지으면 몬스터 하우스라 부른다"는 홍콩계 주민의 발언을 보도했어.

이 현상은 그냥 "홍콩 사람들이 큰 집을 좋아해서" 생긴 게 아니야. 홍콩의 좁은 주거환경을 벗어나려는 욕망, 부모·자녀·친척이 함께 사는 다세대 가족 구조, 지하층 임대 수입, 북미식 단독주택 소유에 대한 꿈이 겹쳐 있었어. 그런데 'monster house'라는 이름은 특정 건축 양식을 넘어서 중국계 소유자와 인종적 차이를 함께 괴물화하는 방식으로도 작동했어.
이 시기 밴쿠버 부동산 가격은 확실히 이민 급증과 함께 상승했어. 다만 이걸 "홍콩 이민자들이 집값을 올렸다"는 단순한 인과관계로 정리하면 안 돼. 토지 공급 제한, 금리와 금융 규제, 글로벌 자본 유입, 도시의 매력, 국내 투자 수요까지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했거든. 몬스터 하우스 논쟁은 표면적으로 건축 미학 논쟁이었지만, 그 이면엔 주택시장 변화의 책임을 특정 집단에 몰아붙이는 방식도 함께 있었던 거야.
애스트로넛 패밀리 — 태평양을 오가며 산 가족

홍콩 이민의 독특한 현상 중 하나가 **애스트로넛 패밀리(astronaut family, 太空人)**야. 태평양을 수시로 오가며 "우주를 떠도는 것처럼" 산다는 뜻인데, 이 표현은 1990년대 홍콩과 이민사회 언론에서 먼저 널리 쓰였고, 인류학자 아이화 옹(Aihwa Ong)이 1999년 저서 『Flexible Citizenship』에서 이걸 유연한 시민권과 초국가적 가족 전략이라는 개념으로 이론화했어.
전형적인 패턴은 남편이 홍콩에서 사업을 계속하고, 아내와 자녀가 캐나다에 정착해 영주권과 교육을 확보하는 구조였어. 하지만 이게 유일한 형태는 아니었어. 남편과 아내가 번갈아 이동하는 경우도, 자녀가 먼저 정착하는 경우도, 결국 온 가족이 홍콩으로 돌아간 경우도 있었어. 이 생활 방식이 만든 건 성공담도 희생담도 아니었어. 어떤 가정에는 교육과 영주권을 위한 효율적 전략이었지만, 다른 가정에는 부부의 별거와 자녀의 외로움을 낳기도 했어. 두 국가를 동시에 활용한다는 건, 두 사회에 동시에 속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계속 조정해야 한다는 뜻이었던 거야.
토론토의 교외 차이나타운

밴쿠버가 홍쿠버가 되는 동안, 토론토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있었어. 홍콩계 이민자들은 기존 스파다이나 차이나타운에만 머물지 않고, 스카버러와 노스욕을 거쳐 마컴(Markham)·리치먼드힐(Richmond Hill) 같은 북부 교외로 주거와 상업의 중심을 넓혀갔어. 넓은 주택, 자동차 중심 생활, 학교와 쇼핑몰, 친족 네트워크가 결합하면서 교외 자체가 새로운 중국계 생활권이 됐어.
2021년 캐나다 인구조사 기준 캐나다 전체 중국계 인구는 약 171만 명이었고, 그중 약 39.6%가 토론토 광역권(CMA)에 거주했어. 마컴에 있는 **패시픽 몰(Pacific Mall)**은 1990년대 중반~후반(자료마다 1996년 또는 1997년으로 다르게 기록돼) 아시아계 이민 수요에 응답해 문을 열었고, 지금은 북미 최대급 실내 아시아 쇼핑몰로 알려져 있어.
차찬텡 — 국경을 넘어온 홍콩식 카페
홍콩 이민자들이 가져온 것 중 가장 사랑받는 유산이 **차찬텡(茶餐廳, cha chaan teng)**이야. 1940~50년대 홍콩의 빙숫(冰室)과 거리 카페가 발전해서, 1950~60년대엔 대중적인 식당 형식으로 자리 잡았어. 영국 식민지 시절 정식 호텔·레스토랑의 서양식 음식이 접근하기 어려운 가격이었을 때, 노동자와 서민도 감당할 수 있는 가격과 속도로 그 절충된 맛을 내놓은 거야.

파인애플빵, 에그타르트, 비단 양말 밀크티, 마카로니 수프, 위엔양(커피+밀크티 혼합)이 대표 메뉴야. 2014년 홍콩의 첫 무형문화유산 목록엔 차찬텡이라는 식당 형식 전체가 아니라, 홍콩식 밀크티 제조기법·파인애플번·에그타르트·위엔양 같은 구체적인 음식과 기술이 등재됐어.
차찬텡이 캐나다로 건너온 건 이 음식 원형을 그대로 수출한 게 아니야. 애초에 홍콩에서도 식민지의 서양 음식과 중국식 조리법, 저렴한 가격, 빠른 회전율이 뒤섞여 만들어진 도시 음식이었잖아. 캐나다에 온 차찬텡은 다시 캐나다의 임대료와 고객층, 다문화 시장에 맞춰 변했어. 밴쿠버의 호유엔 카페(Ho Yuen Cafe) 같은 곳들은 "홍콩의 사자바위 정신"을 내세우며 옛 홍콩 이민자들에게 고향의 맛을 주면서, 동시에 현지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운 음식 문화로 소개되고 있어. 이 음식은 홍콩의 원형이라기보다, 이민할 때마다 다시 조립되는 생활양식에 가까워.
2019년, 다시 뒤집힌 이야기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과 2020년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새로운 이민 물결이 시작됐어. 캐나다는 2021년 2월 홍콩 거주자와 젊은 졸업자·전문직을 위한 최대 3년의 오픈 워크퍼밋을 도입했고, 같은 해 별도의 영주권 경로도 마련했어.
이 새 이주자들은 1990년대 이민자와 성격이 달라. 이전 세대가 자산과 교육을 분산하는 중산층 전략이었다면, 이번엔 청년 전문직, 학생, 활동가, 시민권과 안전을 고민하는 가족들이 중심이야.
2023년 토론토 시장으로 당선된 올리비아 차우(Olivia Chow)는 홍콩에서 태어나 13세에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주했어. 다만 이걸 "1990년대 이민자의 자녀가 도시를 이끄는 이야기"로 읽으면 시점이 안 맞아 — 그녀는 그보다 훨씬 이른 1970년경에 온 이민 1.5세대거든. 그녀의 당선은 홍콩계·중국계 이민자가 오랜 정착과 시민 참여를 통해 도시의 정치적 대표자가 된 장면으로 읽는 게 정확해.
마무리 — 한 번의 도착이 아니라 계속되는 협상
홍콩 이민자들은 빈손으로 오지 않았어. 자산과 교육, 사업 경험, 고향의 음식까지 함께 가져왔어.

그런데 그들이 만든 도시는 홍콩을 복제한 게 아니었어 — 쇼핑몰은 캐나다 교외와 결합했고, 차찬텡은 새 임대료에 맞춰 변했고, 가족은 국경을 생활의 일부로 만들었어.
집은 자산이면서 갈등의 표면이었고, 여권은 안전장치이면서 가족을 나누는 장치였어.
홍콩계 캐나다인의 역사는 한 번의 이민으로 끝나지 않았어. 1980~90년대 가족과 자산을 옮긴 첫 번째 이동, 홍콩과 캐나다를 오가며 두 사회를 동시에 활용한 두 번째 이동, 그리고 2019년 이후 젊은 세대가 다시 향한 세 번째 이동까지. 그래서 이들의 역사는 '도착'보다 '계속 움직이는 정착'에 더 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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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 예고 — 차이나타운 시리즈 9편, 쿠바 하바나로 갑니다. 19세기 계약노동으로 형성된 중남미 유일의 대형 차이나타운, 그리고 지금은 거의 사라진 자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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